셀마(Selmer) Mark-VI 색소폰
셀마(Selmer)가 색소폰을 생산하게 된 것은 1928년 아돌프 색소의 공장을 인수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창립자 헨리의 동생 알렉산더가 미국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명성을 얻으면서 콘(Conn), 번디(Bundy) 등과 클라리넷, 오보에 등의 목관악기 등을 통해 제휴 중이었는데, 1941년 아버지 사후에 경영권을 승계한 모리스(Maurice)가 미국에 머물던 시기에 좀 더 사업이 확장되게 되었고, 2차 대전 후의 극심한 전후경제에 허덕이던 유럽에서 경영난으로 자연히 거대 선진국으로 태어나 유흥산업이 꽃피던 미국시장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셀마가 1948년 번디의 인디애나주 Elkhart에서 SBA(Super balanced action)을 생산하게 되면서 American Selmer가 탄생하게 된다.
셀마의 색소폰 Mark-6의 인기는 색소폰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Mark-6의 정식 출시는 1954년으로 5만4천~5만6천 번에서 시리얼번호가 시작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퍼 발란시드 액션(SBA)의 시리얼번호 4만8천 번이었던 때부터 테스트 샘플로 테너 색소폰이 극소량이 제작되기 시작해서, 1954년부터는 SBA의 생산을 중단하고 마크-6를 주력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마크-6의 특징과 우수성은 너무나 많지만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연주자에게 가장 편안한 악기"이다.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인의 체형에 맞춰지고 대량생산에 따른 생산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상적인 키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서 동양인들이 쓰기에도 운지가 편안하고 키와 바디의 간격이 좁은 편이라 속주가 상당히 용이해진다. 이런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속주를 용이하기 위해 연동되는 키 메카니즘 역시 반응도가 빠르게 설계되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로 이뤄져 있어서 수리의 용이성까지 갖고 있는 데에다가, 업계의 표현에 의하면 환상의 주물비를 가지고 있어서 무게가 가볍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큰 특징이다.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날리지 않고 폭넓게 퍼져 나간다는 것은 수공과정에서 수많은 담금질과 제련이 있었다는 반증이면서, 연주자에겐 일차적으로 적은 호흡으로도 긴 시간 주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고, 무게도 가볍기 때문에 장시간 사용에도 피로도가 덜하다.
테스트 샘플 버전의 마크-6는 완전히 결정된 디자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리얼번호가 낮을수록 SBA와의 차이점이 크지 않으며, 테너를 중심으로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마크-6의 테스트 샘플이 나오기 시작한 4만8천 번을 기점으로 SBA의 보디(Body) 디자인도 재조정되었는데, SBA 알토의 경우 비대칭 Short 보어가 대칭형 Short 보어로 바뀌면서 보디 튜브의 길이가 조금 짧아지고 벨이 조금 길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아메리칸 인그래이빙이 추가되었다. 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지는 5만4천 번에서 6만 번대의 마크-6는 SBA의 재고 부품을 섞어가며 제작하였기 때문에 알토의 경우 그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 당시 가장 많은 생산량을 가진 곳이 북미에 있었기 때문에 주문생산이 지금보다 좀 더 수월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품 재고가 남아있는 한 SBA와 거의 동일한 디자인에 넥도 SBA의 것이 보급되었으며, 알토는 정식 출시 때까지도 디자인을 완전히 결정하지 못했었다.
6만 번대 부터 마크-6 고유의 보어 사이즈를 가진 보디 디자인만을 채용한 것은 분명하나, 5만 번대는 SBA 디자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Patent Number가 4줄이 찍힌 보디부터 마크-6 고유의 보어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England Patent만 가지고 있는 5만 번대는 SBA 보디에 넥 디자인, 키 매커니즘, 스탬프, 인그래이빙만 다르다고 얘기할 수 있다. 따라서 마크-6 알토 색소폰에서 오리지널 디자인을 볼 수 있게 된 시점은 7만번대 부터라고 얘기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7만5천 번을 시작으로 마크-6는 총 세 가지의 보어 사이즈를 갖도록 변경된다. 5만5천~7만5천 번까지 Short, 7만5천~13만9천 번까지 Long, 13만9천~25만천 번까지 Middle 보어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엄지걸이 옆에 새겨 넣었던 마크-6의 모델명이 9만 번대 부터 보어와 벨을 연결하는 보어링 전면으로 이동하고, 13만9천 번대 부터 니켈로 이루어진 넥 조인트가 사라진다. 엄지걸이가 황동에서 플라스틱으로, 보어링의 패턴이 변경되지만 14만 번대 또한 변경되기 전의 부품을 사용한 것도 있다. 마크-6부터 채용된 넥의 'S' 디자인은 5만6천 번대 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이전엔 흔히 '스네이크'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스네이크' 디자인을 가진 넥은 마크-6 출시 시기의 셀마 카탈로그나 5만4천 번대 마크-6 또는 그 이전의 샘플로 제작되었던 마크-6에 채용되었는데 제작 수량이 많지 않아 희귀하다.
이전의 SBA가 현대적인 색소폰의 표준이 되었다면 마크-6는 완전한 현대적인 의미의 색소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의 키 메카니즘을 수정하고 나온 악기가 마크-6였지만 8만 번대에 이르면서 부터는 다양한 시장의 요구에 맞춰 많은 옵션과 수정이 가해지면서 연주자의 개성을 보다 더 부각시키는 악기로 태어나게 된다. 초기의 5만 번에서 8만 번대 (1954~1958)까지의 전작의 개성인 강하면서 화려하지만 살짝 떫은 듯한 소리의 경향을 없애고 약간은 어둡지만 고르고 예쁜, 다소 클래식컬한 경향을 가지고 있는 악기였다.
8만 번대(1958~1960)에 이르러 넥의 내경이 조금씩 넓어지게 되면서 클래식과 재즈 양쪽에서 모두 효용성을 갖고 있는 악기로 태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넥의 내경이 넓어지게 되면 소리가 좀 더 푸근해지고 밝아지면서 음 하나하나의 명확성이 커지게 된다. 10만 번대에 이르러서는 넥 후면 링 부위에 일련번호가 새겨졌다. 당시에는 별로 큰 의미는 가지진 않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넥 교환여부나 악기의 순정성을 판가름하게 되는 자료가 되고 있다. 특이할 만 한 것은 10만 번대 이전의 경우는 아메리카 마크-6는 대부분 24key로 출시되었다. 이 당시에는 F#의 효용성이 별로 논의되지 않았고, F# 키가 없는 경우가 일반화되었으며 프랑스 마크-6의 경우에도 10만번대 후반 이전까지는 주문에 의해서만 F# 키가 장착되었다. 10만5천번대(1963)에 이르면서 넥의 내경과 링의 디자인이 변경되어서 보다 밝은 소리를 내면서 링의 형상에 의해 약간은 거친 소리의 다양한 표현성을 가지게 되었다.
13만 번대에 오면서 다시 한 번 넥의 내경이 조금 더 넓어지면서 연주하기도 훨씬 더 쉽고 밝은 소리가 나게 되었는데, 5~7년 전쯤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13~15만 번대 사이를 최고의 명품이라고 칭했습니다. 15만 번대가 지나면서 약간씩 재질이 변화 되어서 이전에 비해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져 가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를 지배하던 시절이라 악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금속들을 채광하던 광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지만, 식민지들의 독립투쟁과 수많은 전쟁에 지쳐가면서 이전처럼 우수한 재질의 값싼 원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또한 폭발적인 색소폰 수요에 비해 공장설비가 협소하고 낡아 생산과정에서 트러블이 많았다. 하지만 제련과정이 현대화되어 가면서 소리는 약간 가벼워졌지만 보다 밝고 화려해졌으며 재료의 밀도가 더 치밀하게 구성되어서 강한 어택감을 표현하기에 좋아졌다고도 평가되어지고 있다. 16만5천 번을 넘어서면서 부터는 이전의 마크-6와는 주물비가 크게 바뀌어서 도 높은 금속조직의 치밀도를 가진 설계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이 번호대를 기점으로 보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마크-7과 비슷한 성향의 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마크-6는 미국 엘카트(Elkhart) 공장에서 제조된 American Selmer(A. Selmer)와 프랑스 공장에서 제조된 Henri Selmer(H. Selmer)가 있다. 명칭이 나뉘어 불려 진 것은 일본에서 시발된 것으로 보여 지며, 일본 시장이 A. Selmer를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탓에 구별하여 판매를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 시장에서의 H. Selmer는 A. Selmer보다 가격이 최소 30%이상 저렴하지만 요즘 들어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A. Selmer와 H. Selmer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Elkhart 공장에서 제조된 A. Selmer는 미국의 Jazz 시장을 타겟으로 별도의 튜닝을 가미했다는 것이 구설로 남아 있다는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대다수 유명 뮤지션들이 아메리칸 인그레이빙이 새겨진 마크-6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 색소폰 소비국이었던 미국에서 무거운 관세 때문에 현지 조립생산을 택한 것으로, 당시 직수입 셀마 골드라커 색소폰이 최고가 모델이었던 "King"의 Super 20 Silver sonic 가격과 엇비슷했고, 뮤지션들도 직수입 셀마를 더 가지고 싶어 했다고 한다. 또 5만4천 번에서 9만 번까지 마크-6는 프랑스 Euro 공장보다 Elkhart 공장에서의 생산량이 더 많았다.
10만 번을 기점으로 프랑스 Euro 공장의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뒤로 갈수록 서서히 역전되었으며, Elkhart 공장에서 제조한 마크-6의 품질이 하락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A. Selmer 보다 H. Selmer의 품질이 더 좋다고 얘기한다. A. Selmer와 H. Selmer는 인그래이빙과 미묘하게 다른 라커로 구분할 수 있다. A. Selmer는 패드까지 조립을 완료한 후 Finish를 하기 때문에 오리지널 패드가 있다면, 패드 테두리에 반드시 라커가 붉게 묻어있다. 이것 때문에 튜닝을 가미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5자리 시리얼번호를 가진 A. SELMER 마크-6는 보어와 벨, 보디 튜브에 납땜이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분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그래이빙 되지 않은 모델이라면 구분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오리지널 패드를 가진 마크-6를 보기도 쉽지 않고 일반인들이 라커의 차이로 H. Selmer를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 주로 악기를 구하는 국가가 미국이나 일본이기 때문에 H. SELMER보다 A. SELMER를 더 많이 볼 수 있고, 인그래이빙이 없는 모델도 쉽게 볼 수 없으니 아메리칸 스타일의 인그래이빙이 있다면 특별히 의심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변경이 주가 되지만 벨 스탬프도 자주 변경되었다. 크게는 9만 번대 중반과 14만 번대 시리얼 넘버 순으로 스탬프의 글자가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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